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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 사이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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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 어디 아파?”

 

  녀석 목소리가 이렇게 앳되었던가.

  생경하게 느껴지는 목소리에 눈을 떴다. '아니.' 반사적인 대답은 속엣말로만 남았다. 어쩐지 빨리 대답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마른 입술이 떨어져 주질 않았다. 모래라도 집어삼킨 듯 목구멍이 까끌했다. 지금이 몇 시지. 왜 아직 학교는 안 갔지. 내가 얼마나 잤지. 끄응. 말 대신 목을 긁는 한숨소리만 터져나갔다. 머리가 무거워 도로 눈을 감았다. 보이지 않아도, 녀석이 지금 문고리를 잡고 서성이고 있다는 것 즈음은 알 수 있다. 와봐야하나, 고민하는 건가.

 

  “…몇 시니.”

 

  녀석에게까지 들렸을지 모를 목소리를 겨우 쥐어 짜냈다. 폐에 구멍이라도 난 듯 쉬는 숨에 구멍이 나 거칠었다. 팔을 들어 눈을 덮었다. 후끈하게 느껴지는 제 체온에 안구 뒤편이 타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못 들었나, 싶을 즈음 답이 돌아왔다.

 

  “……일곱 시 반.”

 

  일곱 시 반. 매번 녀석의 등굣길을 지키진 못 했지만 녀석이 집에서 나갈 시간이라는 것 즈음은 어렴풋이 알고 있다. 나가려다 말았군. 녀석의 우유부단한 표정이 감은 눈꺼풀 뒤로도 아른거리는 듯했다. 어쩌면 좋을지 몰라 서성이는, 조금은 당황한 기색이 묻어있는 얼굴.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 동안 같이 살며 알게 된 녀석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다지 뻔뻔한 놈은 못 되었다.

 

  “학교 가라.”

 

  머뭇거리는 녀석에게 결론을 내려주었다. 신경 쓸 필요 없는 일이라는 판결. 녀석은 항소하지 않았으나 판결을 바로 따를 생각도 없는 듯 미동이 없었다. 소리 없이 갔나. 감은 눈을 도로 뜰 기력이 없어 한숨에 가까운 숨이 한 번 더 흘러나왔다.

 

  “…밥솥에 밥 있어요.”

 

  결코 작지 않은 발이 문지방 위에서 찔끔이며 서성대었을 모양새를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끝에 ‘요’, 자가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녀석의 오락가락하는 말투는 좀처럼 한쪽으로 정착하질 못 했다. 녀석다운 답에 콧바람이 흘렀다. 굳이 대답을 얹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는데, 녀석이 말을 보태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일어나 배웅이라도 해주었어야할까. 그런 생각에 몸을 일으키려던 차에, 녀석이 정직하게도 도로 문을 닫았다. 그러할 여지 역시 닫는 듯이, 문은 조용하게도 닫혔다. 반 즈음 들렸던 무거운 상체를 도로 침대에 뉘이자 무게에 침대가 흔들리며 시야 역시 함께 흔들렸다.

  걱정을 다 하네, 녀석. 눈을 다시 감아도, 밖에서 무엇을 하는지,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배웅 대신으로 그 소리를 기다렸다. 머리 위로 도로 쏟아지는 잠기운에 눈꺼풀을 다시 들어올릴 수 없겠다 싶을 때 즈음, 현관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덩치에 맞지 않게 이 역시 조용했다.

 

*

 

  형은 요사이 아침에 없을 때가 더 많았다. 신발장엔 언제나 내 신발만이 놓여있었다. 아침뿐만이 아니었다. 골치 아픈 일이라도 생긴 것인지,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잠결에 듣는 현관문이 열고 닫히는 소리가, 어느새 미리 지어져 있는 손대지 않은 새 밥이, 빨래통에 한둘 늘어나는 양말과 와이셔츠가, 형이 집에 들어오기는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형이 증명처럼 남겨두고 간 흔적들을 볼 때엔, 가끔, 형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실천으로 옮긴 적은 없었다. 어쩐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형의 방문은 보통 닫혀있었다. 오늘도 그랬다. 혼자 아침을 먹었다. 날이 부쩍 추워져 조금 더 긴 양말을 신었다.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려던 때에야, 신발장이 평소와 다르게 차 있는 것을 보았다. 어. 형? 대답 없는 집안에 대고 반사적으로 부름을 던졌다. 집에 있었어? 어리석게도 거실을 둘러보았다. 형이 오래 앉지 않은 소파에, 먹은 것들을 도로 정리해 깨끗하기만 한 식탁에 시선이 닿았다. 방에 있겠지. 형 방에…. 마지막으로 시선이 도착한 곳은 형의 방문이다. 그럼 왜 안 나와봤지.

  평생을 닫혀있던 것만 같은 방문 앞에 섰다. 노크를 하려 손을 들기까지도 시간이 한참 걸렸다. 똑. 똑. 손을 둥글게 말아 문을 두드렸다. 두 번. 세게 두드린 것도 아닌데, 경쾌한 똑, 소리 대신 문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소리가 나, 뜨끔했다. 형을 다시 불렀다.

 

  “형.”

 

  문 너머는 죽은 듯이 조용했다.

  죽은 듯이. 덜컥, 헛가슴이 내려앉았다. 손끝이 찌릿하니 괜히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홀로인 줄 알았던 적막을, 실은 둘이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감각. 그런 감각을 느껴본 일이 멀지 않았다. 제 토사물에 익사해 죽은 아버지의 발을, 얼굴보다 먼저 발견하였을 때의 기분이 그러하였다.

 

  “형, 자?”

 

  제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은 것이 느껴졌다. 바보같은 생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한 발 앞섰다. 문고리를, 한 번도 잡아본 적 없는 그 문고리를 잡아 문을 열었다. 몸이 다 들어가지는 않을 정도로, 반 틈만.

  그 안으로 머리를 디밀었다. 처음 보는 것만 같은 형의 방 안, 침대 위, 형일 누군가가 이불을 덮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방의 공기가 한층 눅눅하고, 후끈한 것 같았다.

 

  “형.”

 

  다시 불렀다. 여전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형, 어디 아파?”

 

  그제야, 그제서야.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형이 몸을 움직였다. 안도했던 것 같다. 그마저도 바보같다 느꼈지만, 다행인 것은, 다행인 것이니까….

  몇 시니. 물음이 돌아왔다. 목소리가 가뭄 든 논 마냥 갈라져 있었다. 단순히 방금 잠에서 깼기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좀체 일어나지 못한 오늘 아침에 대해, 말 끝에 따라붙는 잔기침에 대해, 더 묻고 싶었다. 그러나 대신, 나는 거실에 있는 시계로 고갤 돌려야했다. 일곱 시 반, 그 언저리라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 번 더 확인해야했다.

 

  “……일곱 시 반.”

 

  늦은 걸까? 깨웠어야 할까? 한 번 노크라도 해볼걸. 형이 요새 아침마다 그렇게 일찍 나갔으니까…. 변명 같은 말들을 속으로 덧붙이고 있는데, 학교 가라, 피곤 절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어디 아프냐는 말에는 대답을 아직 안 했잖아. 소심하게 따지는 말이 잇속에서 맴돌았다. 감기냐고 물어보기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하지 말라는 걸까. 문고리를 잡은 손에 땀이 나는 것 같았다. 문고리를 놓지 못한 채, 영 다른 대답을 했다.

 

  “…밥솥에 밥 있어요.”

 

  어느샌가 형에게 말을 놓았다. 형이 그걸 지적한 적은 없다. 제가 말을 놓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이미 어느 정도 그러한 반토막의 말들이 입에 녹아들었을 때였다. 그런데 이런 때면, 그러니까, 무언가 데면한 마음이 들 때에면, 꼭 말을 한 층 높이게 되었다. 그것을 형이 알아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렇게 말을 뱉고 난 후엔 입술을 뾰족였다. 형은 답이 없었다. …얼굴이라도 한 번, 봤으면 했는데.

 

  “……다녀오겠습니다.”

 

  문을 닫았다. 형은 아픈 걸까. 얼마나, 어디가? 감기인걸까. 돌아올 때 감기약이라도……. 돌아와도 형이 있을까.

  문고리가 어느새 미적지근해져, 놓으니 손이 허전했다. 도로 닫힌, 아니, 도로 닫은 방문 앞에 서성였다. 그마저 형이 알아챌 것만 같아, 도로 가방을 고쳐메는 체를 했다. 형이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현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두고 온 것이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걸음이 더뎠다. 느리게, 느리게 신발을 신었다. 찬 현관 손잡이를 돌리니 훅, 찬 공기가 얼굴을 감쌌다. 아마도 다시 잠들었을 형이 깰까,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

 

  다시 선 태원의 방문은 아침에 봤을 때보다 더 크고, 무거워 보였다. 원래 그러한 방문을, 오늘 아침에 잠시 잘못 보았던 것일테다. 매일 사는 집에 있는 방문일 뿐인데, 왜 이렇게 어색하게만 느껴지는지. 죽을 그릇에 담고, 약까지 옆에 놓아둔 식탁을 차려놓고, 건호는 태원의 방문 앞에서 손을 꼼지락 대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도 그의 구두는 그대로였으며, 밥솥의 밥도 조금도 줄지 않았다. 닫힌 방문 역시, 그대로였다. 다행히도 약국에 들러 왔다. 무슨 감기인지 몰라, 그냥 감기약을 달라 말했다. 애초에 감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기는 싫었다.

  이러다 죽 식겠다. 그런 변명을 속으로 붙이는 건호다. 이번에는 과감하게 문을 두 번 두드린 후, 바로 문을 열었다.

 

  “형.”

 

  태원은 노크 소리에 마악 눈을 뜬 차였다. 방 안이 온통 어두워, 또 하루를 꼬박 잤구나, 생각했다. 시계를 찾으려 침대 옆 테이블을 더듬거리는데, 방문이, 저절로 열렸다. 그 사이로 얇고 환한 빛과 함께 큰 그림자가 하나 들어섰다. 들어오는 빛에 태원은 눈을 찡그렸다.

 

  “형…. 저녁 먹어.”

 

  그런 태원의 얼굴은 여전히 건호에게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깼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저녁 먹어. 말하고는 도망치듯 얼른 문을 놓고 부엌을 향했다. 생소한 건호의 행동에 태원은 도로 누운 채 옅은 웃음을 흘렸다. 걱정하는구나. 내가 걱정을 다 받네. 문이 닫히지 않아, 거실의 불빛이 태원의 방 안으로 새어들었다. 태원은 정신을 차리려 눈을 꾹 감고 마른 세수를 하곤 일어섰다. 온몸이 땀에 젖어있었다. 아침보다는 나은 것 같았지만 여전히 목은 사포로 간 듯 거칠었다. 그러나 방을 나서기 전, 쏟아질 불빛을, 방안 보다 조금 찬 공기를 맞이 하기 전 느껴진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울 반가움을, 태원은 설명할 법을 몰랐다. 

  밖으로 나가니 어정쩡하게 식탁 옆에 서 있는 건호가 보였다. 식탁 위엔 두 그릇의 죽이, 그리고 그 옆으로는 단정히, 어색하게 단정히 놓인 약이 있었다. 건호가 제 쪽을 힐긋이는 듯 했다. 태원 역시 건호를 힐긋였다. 서로를 바라보기 보다는, 곁눈으로, 우연한 듯이. 건호는 식탁 의자를 잡고, 먼저 앉지도, 그렇다고 다른 일을 하고 있지도 않은 채, 멋쩍은 시선을 이리저리 던지고 있었다. 

 

  “네가 무슨 돈이 있어서 약을 다 사왔어.”

 

  태원이 웃었다. 태원의 입꼬리가 슥 올라갔다. 잠기운과 감기기운을 떨쳐내지 못해 훤한 전등 아래 나른하게 반 즈음만이 뜨인 눈이 살짝 휘었다. 건호는 그 웃음을 정면으로 바라보진 못 했지만, 그랬더라면 드물게 다정한 웃음이다,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태원이 건호의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식탁 앞으로. 그가 차려둔 마음 앞으로. 식탁의 유리에 전등이 반사되어 유난히 눈이 부셨다.

 

  “…식기 전에 먹어.”

 

  건호가 멋쩍어 대답 했다. 여전히 식탁 의자만 매만지는 채로.

  요, 를 붙였어야 할까. 아니, 먹어요, 는 이상하잖아. 드세요도 아니고. 그렇다고 저녁을 '드시라고' 하기는 우스웠다. 건호는 그저 빨리 그가 식탁에 앉기를, 오랜만의 조용한 저녁 식사 시간을 갖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런데 그 대신, 뜨듯하고 묵직한 것이 건호의 뒷목에 와닿았다.

 

  “그래, 고맙다.”

 

  까끌까끌한 뒷머리를 쓸 듯, 건호의 뒷목을 잡았다 놓으며 태원이 말했다. 학생 답게 짧게 깎은 뒷머리가 손바닥 아래 담기었다. 아예 머리를 쓰다듬는 것도 아닌, 다소 투박한 손길. 결코 얇지 않은 건호의 뒷목이 태원의 손바닥 아래 전부 감싸였다. 건호의 등줄기 가운데로 따끔하고도 뜨끈한 감각이 느껴졌다. 단순히 태원의 손이 거칠고, 또 열에 뜨거웠기 때문은 아닐 것이었다. 태원은 새삼 작게 느껴지는, 저보다 부쩍 큰 키를 가진 건호의 뒷목을 바라보았다.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또 멋쩍은 표정을 짓고 있겠지. 

  이내 가볍게 두드리듯 태원의 손이 어깨를 타고 내려오며 천천히 건호의 목을 놓았다. 그리고 건호의 바람대로, 제 몫의 죽이 담긴 그릇이 놓인 자리에 앉았다. 굳이 앉으라는 듯 건호를 보지 않아도 건호가 따라 앉았다. 태원이 먼저 숟가락을 들었다. 건호가 차린 저녁을 드는 것이 처음도 아닌데, 꼭 처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잘 먹을게, 같은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다만 옆에 놓인 하얗고 단정한 약에 한 번 시선을 주었다가, 숟가락 가득 죽을 퍼올렸다.

  건호는 태원이 숟가락을 들자 저 역시 따라 숟가락을 들었다. 제가 차린 밥상 앞에 잘 먹겠습니다, 같은 말은 생략하였다. 다만 앞에 앉은 그의, 참으로 오랜만인 그 얼굴을 다시 한 번 곁눈질로 보았다. 그의 시선이 약에 잠시 머문 것도 보았다. 이후엔 고개를 더 푹 숙여, 제 그릇만을 온전히 시선에 담게 되었다. 건호는 숟가락을 반만 채웠다.

  긴 식사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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