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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록.

 

  내 것이 아닌 기침 소리에 거진 감기려던 눈을 떴다. 목구멍이 먹먹하니 울컥 뜨거워져 뱉어낸 것이 전부 검붉었다. 이미 제 색 잃은 셔츠 위로 다시 한 번 진득한 액체가 흩뿌려졌다. 머리가 무거웠다. 고개가 아래로 꺾여있으니 숨 쉬기가 버거웠다. 그나마 허옇게 나타났다 재빠르게 사라지는 제 숨이 보이는 것이 다행인지, 아닌지. 나는 고개를 훅, 쳐든다.

  컨테이너에 뒷머리를 부딪치니 골 안에 한바탕 메아리가 쳤다. 높은 천정 아래, 꼴에 달아놓은 몫은 하는 희미한 전등 빛에 얼굴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속절없이 열린 입술 사이로 길이 트인 찬 공기가 기도를 베어내듯이 훑었다. 지탱할 힘을 잃은 오른다리가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지며 발 뒷축이 끌렸다. 발끝이 바깥으로 돌아가 묘하게 꺾인 관절이 불편했다. 고작 그런 것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걸 보니 오른다리는 용케도 찔린 데가 없겠거니 하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헛웃음이 났다. 입꼬리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도.

  느적하게 뜬 눈이 시리는가 하면 뜨거웠다. 기침 소리의 근원을 찾으려는 수고까지 할 여유는 없었다. 당장에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이 전부 횅횅 돌고 있었으니까. 아득히 열린 문 틈 사이로 보이는 창고 밖 하늘에 새 날이 창백하게 들어차고 있었다. 지금은 겨울이고, 여긴 서해니, 이 자리에서 해를 보려면 반나절도 더 기다려야할 것이다. 나는 그 언젠가 보았던 일출을 떠올리려 했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도, 화면조정시간 직전의 애국가 뒤로 흐르는 일몰 장면 따위가 고장 난 테이프처럼 머리를 메웠다. 마지막 발악처럼 바다에 불을 지른 해가 세상을 시뻘겋게 물들이나 해의 항변은 밤의 무게에 비할 것이 되지 못 한다. 멀지 않은 곳에서 느리게 철썩이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아마 머지않아 저 파도 안으로…….

 

  콜록, 콜록.

 

  상념을 내쫓는 건 언제나 그 녀석이다. 이번에도 그 녀석일 것이다. 그 녀석이어야 할 것이다. 나는 안도일지, 허탈함일지 모를 웃음을 흘린다. 끓듯이 쿨럭이는 소리가 잦아졌다. 그 위로 시멘트 바닥에 구둣발을 끄는 소리가 겹쳐왔고, 나의 시야 끝에도 비로소 비틀 거리며 일어서는 녀석이 걸렸다. 나는 눈을 감아버린다.

  지익, 턱. 지이익…, 턱. 답잖게 여유를 부리는 녀석이다. 그리 멀지도 않은 거리를 오는 데에 한참이 걸렸다. 감은 눈 위로 그림자가 지는 것이 느껴졌다. 머잖아 텅, 소리를 내며 벌레가 전등에 달려들듯, 새가 유리창에 몸뚱어리를 박듯, 녀석이 바로 옆에 등을 붙였다. 주르륵 흘러내리듯 앉는 녀석에게서 일순 열기가 훅 끼쳤다. 늘상 달고 사는 욕설 하나 섞이지 않은 녀석의 가쁜 숨이 옆에서 갈기갈기 흩어졌다. 녀석의 숨이 차차 느려졌다.

 

  별안간 녀석과 반대쪽 뺨에 닿아오는 손길에 다시 눈을 떴다. 녀석의 손에 있던 것일지, 내 것일지 모를 피가 끈적하게, 뜨뜻하게 엉겨 붙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녀석의 손이 밀어놓는 대로, 녀석의 어깨에 머리를 떨어뜨렸다. 녀석의 어깨에 기대어 보기는 처음이었나. 얄팍한 몸매에도 기댈 구석이 있기는 했는지, 나는 녀석의 어깨 위로 조금 더 무게를 실었다.

  눈이 자꾸만 감겨오는 걸 알기라도 하는지, 녀석이 흔들어 깨우듯 제 팔을 움직였다. 따라 움직이는 머리 안이 어지러웠다. 좀 쉬게 가만있으렴. 입 밖으로 내지 않은 그 말에 녀석이 담배를 잇새로 끼워 넣어 주었다. 그 뒤로 찰칵이는 라이터 소리가 여러 번 이어졌다. 그러나 꼭 이런 때에 담배엔 한 번에 불이 붙지 않는다. 머잖아 쓸모를 잃은 라이터가 땅에 신경질적으로 던져지는 소리가 났다. 그 뒤론 담배를 성의 없이 뱉어버리는 소리가. 잇새로 새어나가는 웃음과 함께 내 입에 물려있던 담배도 옷 위로 떨어졌다.

 

  형.

  이즈음 해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야하는데. 녀석은 말이 없다. 나는 녀석의 부름을 기다린다. 꼭 그게 무슨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그러나 녀석은 여전히 말이 없다. 나는, 내 눈의 깜박임을 세기 시작한다.

  깜박, …깜박, …깜박, ……깜박. 차마 들 힘이 없는 얼굴 위로 간지러운 눈길이 느껴진 것은 그때서야였다. 한참 보고 있었구나. 그래, 그 천진한 시선은 어디 안 가는구나. 나는 그제야 도로 눈을 감는다.

 

  “……무슨 생각하니.”

 

  더디게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건조한 목구멍이 따가웠다. 그러나 침은 넘어가지 않고 역류한 피만이 간간히 그를 적셨다. 무슨 생각하니, 선우야. 무슨 생각해. 대답 대신 돌아오는 침묵에 가슴이 답답하게 옥죄어왔다. 지금 네가 말이 없으면 누가 말을 하겠니.

 

  “으음.”

 

  쿨럭. 타이밍 좋게 녀석이 입을 열었으나, 연이은 작은 기침 소리와 함께 녀석의 목소리 끝이 불붙은 필터처럼 말려들어갔다. 끝끝내 담배를 놓지 못 한 폐병 환자의 마지막 숨 같은 것이 바로 옆에서 끓고 있는 게 느껴졌다. 타르와 핏물이 들어찬 너덜너덜한 폐부가 안간 힘을 다 해 부풀어 오르고 또 줄어드는 소리. 다친 짐승이 그릉대는 소리.

  그러나 그 모든 불길한 소리의 마무리는 녀석의 작은 키득거림이다.

 

  “형도 많이 늙었다는 생각.”

 

  녀석이 빠르게 속삭인다. 하. 공기 중으로 하얀 숨이 퍼진다. 뭐가 우스운지 녀석의 어깨도 작게 들썩인다. 네 농담에 웃기도 하는구나, 내가. 그래, 이번엔 나를 웃겼구나, 선우야. 우습다. 우습지. 우스워.

  새로운 장난거릴 찾은 악마처럼 나와 녀석이 작게 클클댄다. 그 소리 너머로, 저 창고 밖으로, 차 여러 대의 바퀴 소리가 가까워진다.

 

  우리가 오늘은 운이 없구나.

  그러게, 형. 씨발, 진짜 운도 좆도 없지.

 

  허파에 바람이 들었냐는 말은 이런 때 쓰는 거였던가. 녀석은 계속 웃고, 나도 녀석을 따라 웃는다. 폐에 난 바람 구멍을 따라 운명이 보내는 비웃음과 농담이 실컷 드나든다. 녀석의 웃음이 멈추지 않고 울리기 시작한다. 창고 안을 가득 메우고 내 뇌 속을 가득 메운다.

  녀석의 웃음을 따라 정신이 점점 선명하게 아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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