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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면서 우리는 몇 번의 계절을 떠나보낼까요. 나는 산수엔 서툴러요. 아주 오래 살게 된다는 건 그런 것이지요. 살아온 날도, 살아가야할 날도 헤아릴 수 없어지고요. 만나는 이도, 떠나보내는 이도 꼽을 수 없어져요. 나무가 제 생에 돋운 잎을 모두 셀 수 없는 것과 같지요. 그런데 당신 계신 계절까지는 또 몇 번을 떠나보내야할지 알고 싶어져요.

  세상은 둥글게 생겼다고, 이전에 어느 스님이 말씀해주신 적이 있답니다. 무엇이든 둥그런 것에서 태어나, 둥그런 삶을 살고, 둥그렇게 돌아간다고요. 유독 길었던 겨울에는 난 그 둥그런 궤적의 얼마만큼을 온 것일까, 적잖이 궁금해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겨울 지나 돌아오는 봄에는 또 꽃잎을 주워먹으며 하냥 즐거웠지요.

  그런데 당신 처음 만난 날로부터 나에게 시간은 백 하고도 여덟 개의 알을 끼워둔 염주가 되었어요. 당신이 새로 태어날 때마다 나도 새로 태어나고, 당신이 새로 죽을 때마다 나도 새로이 죽는답니다. 당신으로부터 시작하여 당신으로 끝나는 나의 수많은 생은 염주를 한 번 다 굴리면 동그랗게 완성되어요. 당신 손에서 돌아가는 나의 시간, 가운데 가장 큰 알은 당신이어요. 가장 첫 알은 당신 나 만나기 전까지 부디 무사하시라고 굴리고요, 가장 마지막 알은 당신 가시는 길 평안하여 부디 무사히 돌아오시라고 굴려요. 당신과 당신 사이 거리가 명주실처럼 늘어지면 나는 그 위에서 줄을 타며 기다릴테죠.

  떠난 자는 돌아오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지요. 하지만 같은 심장 이고 사는 이들에게 만남과 이별의 무게가 어찌 같은가요. 당신 오시는 날엔 기뻐 울어도 마냥 화창했으면 하고 당신 가시는 날에는 하늘서 장대비며, 우박이며, 서리며, 우레 같은 것들이 쏟아졌음 해요. 한데 태생이 이러하니 아주 통곡을 하여도 오는 것은 여우비여요.

  여우비 뒤에는 무지개가 떠요. 그 무지개 건너편 당신 계신 곳 있을는지요. 당신 만나러 가는 길 우는 얼굴일 순 없으니 무지개를 쫓는 일이 쉽지가 않어요. 돌아와 봇짐 푸시기 전 한 번 아연아, 하고 당신께서 지어주신 이름 불러주세요. 그럼 내가 갈게요. 한 달음에 달려 갈게요.

  당신, 어디쯤인가요. 서쪽에는 잘 도착하셨는가요. 벌써 같은 하늘 아래 잘 돌아오셨는가요. 가슴 쓰라린 귀뚜라미인가요. 하늘 우는 날에야 세상 구경 나오는 지렁인가요. 외로이 밤길 헤메는 반딧불인가요. 큰 눈이 슬픈 황소인가요. 나를 기다리고 있나요. 당신도 손 안의 염주를 굴리고 계신가요. 긴 한숨을 내쉬고 계신가요 혹은 긴 하품을 내쉬고 계신가요. 깊은 숨을 쉬고 계신가요.

  나도 여기서 숨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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