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진 것이라고는 치기 뿐인 남자 고등학생들에게 싸운 이유라는 것은 그닥 중요한 게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어느 놈이 먼저 싸움을 걸었느냐, 정도가 중요한 것이었고 또 그보다는 어느 놈이 마지막까지 주먹질을 하였느냐가 싸움의 핵심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런 단면적이고 간단한 싸움의 법칙은 선생들의 판단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었는데, 선생들 역시 전자보다는 후자에 근거하여 처벌의 강도를 결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니 시비를 튼 쪽은 명백히 아니었으나, 학주가 나타났을 때에 주먹을 날리고 있는 쪽이기는 했던 건호의 입장에서는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에 한 술 더 뜨는 건호의 불손한 침묵은 학주의 신경을 긁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그러나 달리 할 말이 없어 다물고 있는 입을 어찌할 수 있었겠는가. 제게 싸움이 걸린 이유 조차 알지 못한 채, 반격을 하였다는 이유로 가슴께를 둘둘 만 신문지로 찔리고 있자면 빈정이 상하는 것은 건호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끝내 학주가 가정교육을 운운하며 부모님 모셔오란 소리를 하자 건호는 부모님 안 계시는데요, 하고 불퉁한 대답을 던졌다. 그리 대답하고 난 바로 다음 순간에 무표정한 태원의 얼굴이 몽타주처럼 뇌리를 스쳐지나 건호는 입을 더욱 꾹 닫았다. 그제야 잘못을 한 듯한 기분이 건호의 뒷목을 타고 오르려는 듯 하였다. 그러나, 학주의 눈엔 패륜까지 일삼는 천하의 몹쓸놈으로 둔갑한 건호의 고개가 ‘이게 어디서 눈을 똑바로 뜨고 대들어’, 하는 고함과 함께 돌아가며 그런 미진한 죄책감은 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태원의 집에서 지내는 이상, 말썽은 일으키지 않아야했다. 태원이 그렇게 말한 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건호는 그것이 태원과 자신 사이의 불문율이라 생각했다. 애초에 ‘말썽’이라 불릴만한 것을 굳이 일으키는 타입도 아니었으므로 크게 숨길 것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숨길 수 없이 부어오른 뺨에 대해서, 입을 벌릴 때마다 아려오는 터진 입술과 살짝 찢어진 이마에 대해서, 건호는 좋은 변명을 생각해내야 했다.
태원이 신경을 쓰지 않고 넘어간다면 다행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태원은 캐물을 타입은 아닌 듯 했다. 그는 말이 적었다. 종종 밥상머리에서 태원은 ‘학교는 잘 다니고 있니.’ 정도의 상투적 물음을 던지곤 하였으나 답을 크게 곱씹는 것 같지도 않았다. 두 사람이 마주 앉는 밥상은 조용했다. 적당한 거리를 둔 동거는 평화롭게 이어져왔다. 약간은 권위적이고 조금은 서투른 침묵 속에서.
늦는다는 말은 없었던 것 같으니 곧 태원이 돌아올 시간이었다. 약을 바르지도, 밴드를 붙이지도 않았다. 괜히 그런 티나는 유난을 떨 필요는 없었다. 씻고 나보니 이전에 비해선 그닥 티도 안 나고 멀끔한 것 같아 어련히 넘어갈 수 있겠거니 싶었다. 걸어다닐 때마다 학주한테 맞은 엉덩이가 얼얼한 듯 했지만, 그런 것 즈음이야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다. 널어두었던 빨래를 걷고 저녁을 준비했다. 올려두었던 밥솥에서 김이 날 즈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녀오셨어요.”
빠르게 훑은 태원의 얼굴엔 여느 때와 같이, 어느 정도의 피곤함과 무감함이 묻어있었다. 그의 눈치를 보느라 정작 그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건호는 저도 모르게 조금 급히 돌아섰다. 다행히 붙잡는 목소리는 없었다. 보통 때에도 살가운 답인사가 돌아오진 않았으므로 평소와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그가 자신의 얼굴을 보았는지, 보지 못하였는지, 보고서도 알아채지 못 하였는지, 그저 그러려니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질문이 없다는 점에 건호는 안도하였다.
저녁 식사 역시 다른 때와 다름 없이 흘러갔다. 맵거나 뜨거운 것이 입술에 닿을 때마다 쓰라렸고, 무언가 씹을 때마다 볼이 당겼지만, 태원이 알 길은 없을 것이었다. 건호는 그런 때마다 찔리는 듯 태원을 힐끗이며 보았지만 한 번도 눈이 마주치진 않았다. 평소보다 깻잎 반찬이 줄어드는 속도가 느리게 느껴졌다는 것 말고는, 그만큼 태원이 식탁에서 일어나는 것도 늦었다는 것 말고는 지극히도 평범하고 조용한 식사 시간이었다. 태원이 싱크대에 식기를 갖다놓는 뒷모습을 보며, 건호는 이대로 넘어가는 것이겠거니, 생각하며 안도했다. 자신의 식사가 끝날 즈음에는 건호도 미미한 통증에 익숙해졌다. 상처난 곳을 잊을 만큼.
두 사람이 앉는 소파에는 한 사람이 더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사이에 비었다. 언제나 태원은 왼쪽 끝에, 건호는 오른쪽 끝에 앉았다. 뉴스를 보는 태원의 옆, 늘 그랬듯 한 자리를 건너 뛴 자리에 건호가 앉자, 태원이 일어서 방으로 들어갔다. 반사적으로 건호의 고개가 그쪽으로 돌았다. 도로 나오는 태원의 손에는 약 상자가 들려있었다. 아. 터진 건호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둘 사이, 늘 비워두던 자리에 태원이 건호 쪽을 향한 채 앉았다. 무게가 실리는 쪽으로 건호의 몸이 살짝 기울었다. 다리를 접어 앉은 채 태원이 약 상자를 열며 물었다.
“어쩌다 그랬니.”
좋은 변명을 생각해두지 못한 건호의 말문이 막혔다. 무언가 생각해놓았더라도 아마 비슷했을테지만. 태원은 답이 없는 건호의 얼굴을 한 번 보았다가, 바를 연고를, 붙일 밴드를 고른다. 아주 잠시, 오늘 처음으로 마주치는 것 같은 두 눈에 건호는 굳어있었다. 태원이 그 손 크기에 비해 훨 작은 연고를 꺼내 손가락 끝에 묻히고, 건호의 이마에 발라주자, 따끔한 감각에 건호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얌전하게 생겨서는.”
겸연쩍은 기분이 들어 뒷목이 간지러웠다. 맞은 뺨이 유독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상처가 그리 길게 났나 싶을 정도로, 태원이 약을 발라주는 시간이 건호에게는 길게 느껴졌다. 그의 두꺼운 손가락 끝이 뜨거웠다. 줄곧 내리 깔았던 시선을 들어 그를 보니, 그의 눈썹을 둘로 찢어놓은 흉터가 눈에 띄었다. 제 머리를 쓸어올리곤 밴드를 붙여주는 그의 눈썹이 움직였다. 눈썹이 도로 제자리를 잡았을 때 두 사람의 눈이 다시 마주쳤다. 건호는 태원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없는 애들 건 뺏지 마라.”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변명하는 대신 건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원은 건호의 얼굴을 보고 있는 듯 하더니, 오래지 않아 도로 연고와 밴드를 상자에 넣고 일어섰다. 태원이 건호를 내려다보고, 자신의 볼을 손 끝으로 톡톡, 치며 말했다.
“얼음 대고 있어라.”
도로 불 꺼진 방을 향하여 약 상자를 들고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건호는 돌아앉은 그대로 멈추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