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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 - 캐스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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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집엔 그의 방이 아닌 빈 방이 하나 있다.

  그는 그 방에 다녀가는 사람들을 사랑했다.

 

*

 

  처음 그 방의 주인이었던 사람은 어떤 남자였다. 그 남자는 그 집의 전주인이기도 했다. 그때에 그 방은 그에게 있어 통제구역이나 마찬가지였다. 험악한 경고표지판이 세워진, 철조망이 둘러싸인 제한구역. 발 들일 수 없는 그곳을 드나들고자 하는 욕망조차도 그는 함부로 갖지 않았다. 남자가 ‘들어오지 말라’ 공표한 적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번도 그 방을 몰래 둘러볼 엄두를 내지 못 했다. 그 표지판은 누가 세운 것이었나. 그런 의문 역시 그는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한 번은 그 방 깊은 곳에서 그의 얼굴에 난 상처를 치료할 구급상자가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의외의 장소에서 나오는 구급상자에, 그는 그 방에 제 예상보다 많은 것들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호기심은 딱 그 정도 선에서 멈추었다. 더 이상을 궁금해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궁금해해선 안 된다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가 머무는 동안 그 방은 방문이 닫혀있거나, 불이 꺼져있었는데, 얼핏 밖에서 바라본 그 방은 언제나 훵해, 원래의 평수보다도 조금 더 넓어 보였다. 그 방에 남자가 머무는 모습을 그는 자주 보진 못 했다. 남자가 들어가 있을 때엔 좀 덜 훵한 방이었을까. 다를 것 없이 남자에게도 너무 넓은 방이었을까. 남자가 그 방을 나갈 때까지도 그는 답을 찾지 못 했다.

  애초에 남자는 거실에 머무르는 때가 더 많았으므로, 비어있는 소파 한 구석, 어쩐지 다른 곳보다 움푹 패인 듯한 그 구석을 바라보며 그는 종종 남자를 떠올리곤 했다. 그와 남자가 함께 머무른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아, 그는 혼자인 집에 익숙해질 시간을 가져야했다. 이후로도 남자의 방이었던 방에는 발을 들이지 않았다.

 

*

 

  그 방의 두 번째 주인은 어떤 여자였다. 그 여자는 그 방을 자신의 방이라고 생각지는 않았을테지만. 여자가 그 방에 사는 동안, 그의 집은 비로소 그의 집이 되어서, 여자의 방만이 뚝 떨어져 존재하는 것 같았다. 여자 역시 제 방에 들어오지 말라 으름장을 놓은 적은 없었지만, 그것은 그와 여자 간의 암묵적이고도 당연한 규칙이었다. 여자는 거실이나 부엌에 나와 있는 법은 거의 없었고, 아주 늦고도 아주 이른 새벽에 비척비척 들어와 방 안의 침대에 엎어지곤 하였다. 여자에겐 딱 그 정도의 의미를 갖는 방이었을지도 모른다. 여자에게 방을 내어준 그에게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여자가 그 방을 떠날 때, 여자는 자신의 짐을 전부 챙기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나머지는 버려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짧은 이별의 키스와 함께 남겨진 여자의 옷가지며 다 써가던 화장품들을, 그는 한데 모아 불에 태워야했다. 남겨진 물건들의 대부분은 언젠가 제가 여자에게 선물하였던 것이었다는 사실을, 그는 모를 수 없었다.

 

*

 

  마지막으로 그 방의 주인이었던 사람은 어떤 아이였다. 아이가 그 방의 새로운 주인이 될 때에야 그는 그 방에 아무렇지 않게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적나라한 형광등 불빛 아래 훤히 보이는 방 안엔 정말로 별 것이 없었다. 아이에게 있어 조금 크다, 싶은 방의 더욱 컸던 침대가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 뿐. 그 침대 위에서 아이는 자랐다.

  처음 이 방에 아이가 들어왔을 때, 아이는 쉬이 잠에 들지 못하고 꼭 새벽이면 거실이며 부엌을 배회하였다. 그런 아이를 위해 그는 침대 위 천장에 야광별을 붙여주었다. 이후로 아이는 더 이상 새벽에 깨지 않았다.

  아이가 그 방의 주인이었던 동안, 아이의 방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있었고, 모든 것이 너무나도 뻔해 우스울 정도였다. 참으로 단순하고도 평면적인 아이의 방을, 그는 스스럼 없이 드나들었다.

  아이에게 더 이상 침대가 너무 크지 않게 되었을 때, 그러니까, 아이가 침대 위에서 한껏 기지개를 펴면 발끝이 침대 밖으로 삐져 나가게 되었을 때, 아이는 그 방을 떠났다.

  그러나 그 빈 방이 이제 다른 누군가의 방이 될 일은 없었으므로, 그는 그 방을 언제까지고 아이의 방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그러니 그는 침대 위 천장에 붙여둔 야광별을 떼낼 필요가 없었다.

  방을 떠날 때에도, 아이는 여전히 아이였다. 언제든 그 방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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