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례식엔 언제나 비가 왔다.
울어줄 이 하나 없는 자들을 위한 것인지 세찬 빗소리는 곧 곡소리가 되어 귓전을 울렸다. 싸늘하고 굵은 빗방울들이 비수가 되어 땅으로 내질렀다. 속이 꽉 찬 드럼통을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는 우산을 때리는 빗소리보다 더 가까이 들렸다. 거슬렸다.
예라도 갖춘 듯 이상하리만치 나란히, 또 반듯하게 놓인 한 쌍의 드럼통은 차려지지 않을 젯밥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훌쩍 올려다보아야 했던 이들이 제 허리께 즈음 높이로 구겨진 채 담겨있는 모양새가 별안간 우습게 느껴졌다. 참 인간 별거 없다, 그죠? 정말 그 안에 들어간 거 맞는지 몰라, 같은 농담은 속으로만 던졌다. 그러니 혼자만 웃을 수 있었다.
무심한 거리를 벌려두고 담배를 물었다. 당신들 향 대신이야. 이제는 라이터에 손을 대지 않아도 저절로 불이 붙는다. 폐부를 훑고 나가는 희뿌연 연기가 비의 장막 위로 덧대어졌다.
*
아무도 울지 않는 장례식이었다. 원래 회장 칭호를 달았던 이의 장례식에는 우는 이보다 웃는 이가 많을 수밖에 없는 법이다. 지금 내리는 비만이 그를 위하여 우는 것일테다. 하지만 아마 그가 이 비를 본다면 제가 해악을 끼친 이들의 원망이 비가 되어 내리는 것이라느니 뭐니 하는 한심한 소리를 늘어놓았을 것이다.
그런 말들을 밖으로 끄집어내지 않아도, 그는 그다지 파악하기 어려운 사람이 아니었다. 약해빠졌고, 구질구질했다. 미련스러웠고, 멍청했다. 그리고 그걸 누구보다도 잘 숨겨냈으나, 동시에 형편없는 위장만을 둘렀다.
‘약해서 그래, 약해서….’. 그에게 과분한 연민과 애정을 쏟던 여자에게 그의 행동이 거슬린다고 짜증을 부렸을 때 들은 말이었다. 그때에는 그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지금 이 장례식만 봐도 알만하지 않은가.
꼴에 예의라고 다들 심각한 안색을 꾸며내고 있었으나, 친애하던 이를 잃은 자의 낯에 어울리는 침울한 빛은 찾을 수 없었다. 염불보다야 잿밥이고 제사보다는 젯밥이라지만 동네 개새끼가 죽어도 이것보단 슬퍼하겠다. 머리와 눈깔 굴러가는 소리만이 요란했고 누런 이를 드러내며 인사를 나누는 이들이 유독 역겹게 느껴졌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위선을 피부에 녹여낸 채 제가 할 법한 생각은 아니다 싶었다. 그래, 추접스레 주접떠는 것보다야 그게 낫지.
나라고 슬플 일이 뭐가 있겠는가. 나는 그의 영정사진 앞에 완장을 차고 서서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아니, 가장 크게 웃고 싶었다. 그것은 내가 한때 그가 죽기를 바랐어서도 아니었고, 그의 아랫사람으로서 쌓였던 억하심정 때문도 아니었다. 애초에 이 장례식에는 시신이 없었다. 저기 병풍 뒤에서 향내 맞고 있어야할 영정 사진의 주인이 사실은 웬 계집애한테 홀려서 도망을 갔다는 걸, 그래서 이리 젯밥 먹는 시늉을 한다는 걸 밝히면 이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이 웃긴 사실을 나만 알고 있어야한다니. 아쉬웠다.
아니다. 한 사람 더 있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 내가 알기론 -그리고 내가 아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단 두 사람뿐이다. 나, 그리고 저기…….
아. 여기 있네. 침울한 사람.
역시 완장을 차고 있는, 그의 ‘식구’. 박 건호. 그가 박 건호에게 직접적으로 이 쇼에 대하여 말하는 걸 보지는 못 했지만, 그가 말해두었다고 언질은 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저 얼굴은 뭐람. 상주 자리에 선 상주의 얼굴이다. 아니. 그보다도 더 정확하게는, 주인 잃은 개새끼 꼬라지. 영정사진에 콕 박힌 시선. 남겨진 이의 처연함, 다시 볼 수 없는 이에 대한 애달픔. 최소한 그에 가까운 감정이 눅눅히 묻은 낯짝.
나는 그 얼굴을 오래 건너다볼 수밖에 없었다. 이 사기극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의 표정이 아니잖아? 너는 이게 우스워야하는 거잖아? 왜 버림 받은 개새끼처럼 굴어.
픽, 웃음이 새었다.
하나같이 약해빠진 등신들. 그런 표정은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나 지어야지. 나는 그 죽상의 시선이 고정된 영정사진 앞으로 걸어나갔다. 보여? 보고 있어? 당신을 위해 울어주는 사람이 있긴 하네. 좋겠네, 정 태원. 좋겠어.
절을 두 번. 웃음을 참느라 어깨가 떨렸다.
*
첨벙……, 첨벙.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질 때보다도 처연한 소리가 연달아 났다.
이내 그 소리마저 비에 일렁이는 바다의 하얀 포말 속으로 잠겼다. 하늘이 개려는 듯 빗소리가 잦아들고 있었다.
잘 가, 지금까지 수고하셨어요.
이것으로 내가 치러주어야하는 장례는 전부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