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날 내가 죽었습니다. 나의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오래전 읽었던 책 중, 그렇게 시작하는 책이 있었어요. 제목도 같았어요. 어느날, 내가 죽었습니다. 청소년 권장도서의 목록에서 처음 그 책의 제목을 발견하곤 바로 도서관에 가서 빌려왔었지요. 끌렸거든요. 동화였어요. 사고로 죽은 친구의 일기를 펼쳐봤더니, 첫 문장이 저랬던 거예요. 그 친구는 어느날 부터 자기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일기를 쓴 거죠. 그리고 정말 죽은 거예요. 어느날에요. 그 책을 좋아하게 되진 않았지만, 끝까지 다 읽었을 때, 나도 한 편의 일기를 적었던 걸로 기억해요.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그런데 나는 지금 정말로 일기를 적고 있어요. 오늘은 하고 많은 어느날들 중 ‘그날’이 되어버렸구요, 나는 문장을 확정형으로 마무리 지어요. 허공은 일기장이구요, 속삭임이 글씨가 되어요. 날씨는 흐림, 때때로 비. 나의 사망 선고를 죽은 내 옆에서 듣고서도, 나는 오늘의 날짜를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어요. 여러 기계들이 연결되어있지만, 정작 중요한 선은 모두 끊겨버린 나의 감긴 눈을 보는 일은 나에게도 힘들었어요. 그 눈을 뜨게 할 수 있다면 나에게 키스라도 했을 거예요. 거울로 마주하던 나의 두 눈이 그렇게 간절할 수 없었어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정말, 나는, 죽었는걸요.
그렇게 영원히 나의 눈이 감기는 순간에, 당신은 나의 옆에 없었어요. 참을성 없는 나는 당신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도 못했거든요. 잘 한 걸지도 몰라요. 아니요, 정말 잘 한 걸까요? 모르겠어요. 애초에 그건 나의 영역조차 아니었는걸요. 식어가는 내 손을 놓는 일과, 이미 식어버린 내 손을 잡는 일 중 뭐가 더 당신에게 힘들었을까요? 모르겠어요. 둘 다 당신에게 너무해요. 나는 죽지 말았어야 했어요. 하지만 나는 죽었는걸요. 나는 당신 대신 남겨지지 못했는걸요.
분명 연락을 받자마자 달려왔을 당신 머리가 젖어있었어요. 당신이 차에서 타고내리는 그 짧은 순간에 야속하게도 비가 쏟아졌는가봐요. 당신이 온통 축축한 얼굴로, 어깨로,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일어서 당신을 향했는데, 당신이 나를 그냥 통과해 걸어가는 거예요. 이제 내가 아닌 나를 보기 위해서요. 보지 마요! 소리를 쳤어요. 당신에겐 들리지 않았겠죠. 보지 마요, 보지 마……. 당신 옷자락을 쥐고 끌고 나오고 싶었는데. 당신 눈을 손바닥으로라도 가려보고 싶었는데. 당신은 우는 나를 보지 못 하고, 나는 딱딱해지는 내 손끝을 잡는 당신의 다리 옆에 주저앉아 울었어요. 주변이 한없이 깜깜했어요.
있잖아요, 당신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하루는 그런 꿈을 꾼 적이 있어요. 피그말리온 이야기 알아요? 자기가 만든 완벽한 조각상에게 반해, 그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예요. 이 남자를 딱하게 여긴 여신 아프로디테가 조각상을 사람 갈라테이아로 만들어주었고, 그래서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게 되는 이야기예요. 근데 나의 꿈속에서는 이 이야기가 반대였어요. 나는 너무도 사랑하는 애인이 있었어요. 우린 완벽한 짝이었어요. 처음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점점 시간이 가며 우리는 서로를 위해서 태어난 것처럼 꼭 맞추어졌어요…. 서로가 서로의 피그말리온이자, 갈라테이아가 되어서. 서로를 다듬고, 쓰다듬었고, 혹여 생채기라도 날까, 모난 부분 하나하나 정으로 치지도 못하고 손가락이 닳아 지문이 사라질 때까지 매만졌어요. 그런데 사람으로서 감히 완벽해진 것을 시기한 어떤 못된 신이, 나의 애인을 돌로 만들어버린 거예요. 나는 조각상이 된 눈부시게 아름답던 나의 애인을 애달프게 끌어안고, 앓다 숨을 거두었어요. 내가 죽은 후에 내 애인은, 그러니까, 나의 사랑은, 아름답다며 모두에게 칭송을 받았지만… 나의 애인은 이미 죽었는걸요. 나는 찬사를 내뱉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나의 창백한 애인을 멀리서 바라보다 잠에서 깨어났어요. 그날 당신보다 먼저 일어났어요. 당신의 감은 눈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어요. 꿈은 항상 반대니까요. 그래서 나의 완벽한 당신은 눈을 뜰 거라 확신 했거든요. 그리고 참으로 당연하게도, 정말로 당신이 눈을 뜬 그 순간, 당신에게 키스했어요. 그날 나의 웃음소리가 내 귀에도 선한 것 같아요. 어쩌면 그 웃음소리에 당신 것도 섞여 있을지도 몰라요. 그렇죠? 잠긴 목소리로 웬일로 일찍 깼느냐고 묻는 당신에게 나는 보고 싶었다고 대답했어요. 나는 꿈이 반대라 참 좋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반대가 될 줄은 모르고. 차갑고 딱딱한 나는 아름답지조차 못했단 말이에요.
뒤늦게 친구들도 도착하자, 당신은 자리를 피했어요. 눈물범벅이 된 내 친구들. 사랑하는 친구들이었지만, 달래주고 싶었지만, 나는 모두 뒤로 하고 당신을 따라갔어요. 당신에게 사과하고 싶었어요. 미안해요. 크게 사고를 친 아이처럼. 이미 밤이 되어 흐릿한 불만을 켜둔 병원 복도를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걷는 당신 뒤를 따라 걸으며, 미안해요. 미안해요. 중얼거렸어요. 빌었어요. 그래도 당신은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어요. 용서받기는 글렀죠.
아무렇게나 세워두었던 차에 다시 올라타, 당신은 평소처럼 운전을 했어요. 나는 당신 옆좌석에 앉아, 당신이 혹시라도 사고가 나진 않을까 조마조마했죠. 비 오는 날의 사고에 순식간에 전문가가 되어버린 나였으니까요. 훵한 당신 시선이 신호등을 보는 건지, 아닌지. 참 먼 곳만을 보았어요. 그래도 다행히 집에 오는 길에 성난 클락션은 한 번만 들었어요. 당신을 따라 내려, 당신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타고, 당신과 함께 복도를 걸었어요. 그 언젠가 우리 처음 만났던 날처럼요. 당신의 걸음마다 자동 조명이 켜졌는데, 당신의 두 걸음 뒤, 내가 걷는 자리에는 빠르게 불이 꺼졌어요. 나는 당신의 걸음이 어디에서 멈출지, 너무 빨리 알고 싶진 않아, 땅을 보며 걷다, 내 주위가 어둠에 잠기자 고개를 들었어요. 우리의 문 앞에 멈추어선 당신은 번호를 누를 듯, 말 듯… 손을 들었다가 내려놓고. 이내, 어둠은 당신 위에도 쏟아졌어요.
내가 점점 사라져가는지, 나는 꼭 까무룩 잠드는 사람처럼 깜박, 깜박 의식이 끊겼어요. 다시 일어났을 때에 당신은 검은 정장을 입은 채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어요. 나는 당신 뒤를 급히 따라갔어요. 언제나 넥타이만은 화려하던 당신이었는데. 나는 그 구불거리는 자수를 손끝으로 만지는 게 참 좋았는데. 이미 바른 넥타이를 내가 매준 것 마냥, 한 번 괜히 고쳐 매줄 때 뿌듯했는데. 상복을 입은 당신 뒤를 다시 좇았어요. 우리는 처음 가보는 장례식장에 도착했구요. 아마 희가 알려준 것이겠지요. 저번에 내가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진탕 취했을 때, 그애 핸드폰으로 연락했었잖아요. 맘 여리고 착하고 속 깊은 우리 희. 당신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했을지, 놓쳤어도 뻔해요. 당신이 어떻게 대답하지 않았을지도요. 이, 아, 연.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세 글자를 입구의 작은 전광판으로 확인했어요. 3-A실.
어째서 장례식장의 입구는 그토록 작게 만드는 걸까요? 바깥에서 안쪽이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함일까요. 그들의 슬픔은 그들의 공간에서만 맴돌게 하기 위함일까요. 서로의 슬픔이 섞이지 않게 하기 위함일까요. 당신이 들어갔더라면 꼭 고개를 숙여야했을 것만 같아요. 당신은 발을 떼지 못 하고, 여러 사람의 눈물자욱이 추적추적 검게 남은 흰 타일 바닥을 밟고 서서, 나의 이름이 적힌 표지판을 들여다보고 있었어요. 나는 그제야 당신을 지나쳐, 나의 장례식장을 기웃거렸어요. 나는 비로소 그때 나의 눈을 다시 마주할 수 있었어요. 이전에 친구들과 스튜디오에서 찍은 우정사진에서 잘라온 듯한 영정사진 속의 내가 너무 예쁘게 웃더라구요. 그날 입을 옷 중 몇 개는 당신이 골라주었었는데, 기억나요?
내가 며칠을 잠들어있던 걸까요. 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전부 거기 있었어요. 정말 오랜만인 엄마와 아빠. 목소리를 들은 지가 한참이라 기억이 안나는 것 같았어요. 붉게 짓무른 눈가와, 그럼에도 조금 올라간 입꼬리로 조문객들을 맞는 나의 부모님. 가끔씩 열리는 입술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쉬어 낯설었어요. 드문드문 드나드는 나의 친구들. 내가 없어선지, 테이블은 숨막히게 조용했어요. 걔네들 술 마시는 법은 내가 다 가르쳐준 것 같은데 말이에요. 술은 그렇게 마시는 게 아닌데. 그리고 비석처럼, 솟대나 장승처럼, 언제나 나를 가까운 곳에서 지켜봐주던 희, 푼수 같던 목소리로 코맹맹이 소리를 하는 정은이, 그리고… 먼 곳에 있던 혜림이.
혜림인 어쩐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도 더 작아져 있었어요. 울면 그 애는 얼굴이 온통 새빨개져요. 토마토 같은 얼굴, 조금 길어진 풀린 파마머리…. 그 애와 함께 찍은 사진을 담은 앨범을 당신에게 들킨 적이 있었지요. 숨긴 것도 아닌데 들킨 것 같았어요. 혜림이 얘긴 당신에게 많이 못 했어요. 그 애가 나를 많이 바꾸어놓았는데도요. 혜림이를 여기서 볼 줄은 몰랐어요. 한국에 다시 들어 왔는 줄도 모르고 있었거든요. 혜림이는 당신을 만나기 이전에 내가 만났던 사람이었어요. 나보다 여리고 섬세해서, 내가 상처를 많이 주었어요. 내가 늘 떠날 사람 같았대요. 그걸 견디지 못하고 혜림이는 나를 떠났어요. 늘 떠날 것만 같은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어떤 건지, 나는 당신을 통해 알았어요. 그런데 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게 당신을 떠난 건 아닌데. 절대, 절대 아닌데. 나는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당신과 함께이고 싶었는데……. 혜림이는 결국 내게 한 권의 앨범이 되었어요. 그런데 내가 당신과 만든 앨범이 몇 권이었지요…. 그러고보니 그 앨범들은 이제 다 어떻게 될까요? 당신, 얼른 챙겨놓았어요? 나는 당신에게 몇 권의 앨범이 되었나요?
내가 안쪽의 사람들에게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당신은 끝내 내 쪽으로 오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어요. 그 순간 희가 당신을 보고 있었기라도 한 듯 일어서 밖으로 나왔지만, 끝내 당신을 붙잡지는 못했어요. 당신이 사라지는 게 조금 더 빨랐거든요. 나는 당신의 뒤를 쫓으며 희를 돌아보았어요. 그러고보니, 어쩌면 희는 나를 보러 나온 것이었을 수도 있겠네요…. 희에게는 다시 인사를 하러 가고 싶은데, 나에게 그럴 시간이 있을까요. 주어진 시간이 사라지는 것이 느껴져요. 바닷가의 모래성이 된 것 같아요. 손으로 흙을 대강 모아 만든 모래성이요. 파도가 칠 때마다 나는 뭉그러지고, 흩어지고, 쓸려나가요. 살아있을 때에도 종종 그런 기분이 드는 날이 있었지요. 그런 때에 가만 당신에게 등을 맡기면 당신은 나를 단단하게 안아주었어요. 사라지는 것도, 스러지는 것도 아니라고, 다만 살아가고 있는 거라고 두 팔로 말해주는 당신이었어요. 그렇게 나의 목소리가 당신 안에서 메아리치는 걸 들을 때, 나는 세상의 모든 산맥을 담을 수 있는 바다가 되는 것만 같았어요.
진눈깨비가 내려요. 당신이 도로 차에 올라타요. 적막. 공기가 차요. 당신은 내가 없으니 히터도 안 틀어요. 당신 뺨도 분명 차겠죠. 우산은 왜 자꾸 안 펴고 다녀요? 이 적막이 나는 너무 서러워요. 우리 사이에 어떤 말도 오고 가지 못한다는 점이 슬퍼요. 난 할 말이 많아요. 처음 죽어봤단 말이에요. 죽는 게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 당신을 만져도 만져지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나를 외롭게 하는지 앞으로 한 달은 투덜거릴 수 있어요. 그리고 당신의 대답을 듣고 싶어요. 그러니, 하는 당신의 여상한 대답을 듣고 할 줄 아는 말이 그것밖에 없냐고 타박하고 싶어요. 차라리 내게 혼잣말이라도 해주면 안 돼요? 나는 이제 당신에게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말을 걸지 않아요. 그럼 정말로, 당신 답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게 되니까요. 당신 앞으로 걷지도 않아요. 그럼 정말로, 당신이 나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견뎌야하니까요.
깜박. 다시 눈을 떴을 때엔 창밖으로 그 카페가 스쳐 지나가고 있었어요. 내가 우연히 당신을 만났던 그 카페 말이에요. 너무 반가운 마음을 꾹꾹 누르고, 당신 뒤를 도둑고양이 걸음으로 밟다 들켰던 날. 기억하죠. 그날 내가 무슨 생각을 했냐면요, 나와 함께이지 않을 때의 당신 모습이 참 귀엽다고 생각했어요. 무거운 졸음을 눈에 얹고 커피를 홀짝이던 당신. 아주 오래된 영사기처럼 한 장, 한 장, 풍경을 느리게 넘기던 당신. 어쩜 그리 한결같은지! 힐긋거리는 동시에 웃음을 참느라 아주 혼났어요. 그런데요, 있잖아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때 당신은 나와 함께이지 않은 게 아니었어요. 집으로 돌아오면 당신에겐 언제고 내가 있었으니까요. 그때도 나와 함께였던 거였어. 이제는 정말로 내가 없는 당신이 카페를 지나쳐요.
우린 함께 당신의 회사로 들어가요. 이렇게 놀러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당신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늦은 시간인데도 전부 검은 정장을 입었어요. 꼭 장례식장 같아요. 어디에도 당신 눈길이 머무르지 않아요. 그런 당신 얼굴에서, 슬픔이 뚝뚝 떨어지는데 아무도 당신에게 이유를 묻지 않아요. 이 사람 좀 봐요. 울잖아요. 어쩌면 그렇게들 매정해요. 한 명 한 명 붙잡고 따지고 싶었어요. 왜 아무도 신경을 안 쓰느냐구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면서…. 검은 정장 사이를 가로지르는 당신의 상복, 그 뒷모습을 좇다, 나는 다시 소등되어요.
어느새 나는, 우리는… 누군가의 사무실… 안이었어요. 어두웠어요. 모든 불을 꺼둔 채, 창밖에서 들어오는 불빛에만 의존하고 있었어요. 어쩌면 당신 표정을 가리기에 제격이겠어요. 우리 둘 다 알다시피… 당신은 티가 많이 나잖아요. 당신보다 키는 작지만 당신에게 지지 않을 법한 단단한 덩치를 가진 남자와 당신이 앉아있었어요. 당신과 닮은 흉터를 갖고 있더라구요, 이마에요. 당신이 그렇게 말해준 적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 사람을 보고 이전에 당신이 나에게 말해주었던 당신의 형을 떠올렸어요.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던…. 턱. 양주잔을 둔탁하게 내려놓는 소리가 났어요. 당신 것인지, 그 남자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어요. 오늘 당신이 만난 사람 중, 유일하게 당신의 슬픔을 알아차리는 사람이었어요. 그 사람 입술이 무슨 말을 할 듯, 하지 않을 듯, 미세하게 달싹이는 것을 나는 보았거든요. 나는 빈 당신 옆 자리에 앉아 당신 어깨에 기대었어요. 당신은 어쩌면 나를 위해, 움직이지 않아주었어요. …며칠 쉬는 게 낫겠니. 오랜 정적 끝 그 남자가 끝내 입술을 떼었어요. 네. ……. ‘네.’ 참 오랜만에 듣는 당신 목소리. 소금기둥 같은 당신의 목소리. 잠긴 당신의 목소리. 나는 짧은 당신의 대답에 눈물을 터뜨렸어요. 무겁고 매캐한 공기에 기침이 났어요. 나는 이제 더 이상 숨을 쉴 수도 없는데 말이에요.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이상하게 자꾸 비가 오네요. 눈도 아니고…. 당신은 우산을 쓸 생각도 없어보이는데 말이에요. 나는 밤거리 네온사인과 신호등에 붉게, 푸르게 물드는 당신 얼굴을 끝없이 바라보아요. 우리집 스탠드가 그리워요. 전구를 갈아끼운 후로 너무 밝아졌다고 내가 불평하던 그 스탠드 있잖아요. 주황빛이 나는 거요…. 집에 가요, 건호 씨. 나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도 될 말을 중얼거려요.
우리는, 텅 비어있는 싸늘한 우리의 집에 들어서요. 며칠 사람이 드나들지 않았을 뿐인데 유독 차요. 히터 틀고 싶어. 전기장판이나 틀어요. 이불 덮고 그 안에서 하루 쟁일 꼼지락 대요. 당신 휴가도 냈잖아요…. 내 바람을 당신이 들었는지, 당신은 우리의 침실로 향해요. 내가 먼저 이불 안을 데워놓고 싶은데, 나는 너무 차요. 그 찬 침대 위에 당신이 웅크려요…. 이불이라도 제대로 덮지. 나는 당신의 옆에 누워요. 함께 웅크려요.
건호 씨, 오늘은 어땠어요. 별일 없었단다. 매일 별일 없대. 그래도 별일 없으니 좋네요. 힘들게 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응. 다행이네요…. 당신을 안아주고 싶은데, 안을 팔이 없네요…. 이렇게 당신을 보고 있는데, 당신이 너무 보고싶어요. 보고싶다는 말엔, 보여지고 싶다는 말도 포함된다는 걸 나는 이제 알았어요. 건호 씨, 나 아직 모르는 게 많아요. 죽기 싫어요.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요. 당신과 함께 숨쉬고 싶어요. 함께 아프고 싶어요.
당신이 눈을 감아요. 미간에 주름이 져요. 나는 투명한 엄지를 들어 당신의 미간을 살살 문질러요…. 그러니 당신 눈가가 빛나는 것 같아요. 나는 그곳도 쓰다듬어요. 그래도 내가 지울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어요. 건호 씨, 한 번만 다시 눈 떠 주면 안 돼요? 그 눈동자에 나를 담아주세요. 평생 당신의 새까만 원형의 바다 안에서 허우적대고 싶어요. 당신의 바다에 잠긴 채 숨 쉬는 법을 배울게요. 조금 추워도, 견딜 수 있는데.
나는 당신이 잠든 모습을 정말 좋아하지만요, 지금은 당신을 마구 흔들어 깨우고 싶어요. 이 꿈에 갇혀버린 나를 안아달라구요. 나도 깨워달라구요. 건호 씨, 자요? 정말로 자요? 건호 씨, 나 눈 앞이 자꾸만 깜깜해져요. 이번에 눈을 감았을 때 다시 일어나지 못 하면 어쩌지요? 내일 아침 이 침대에 당신 뿐이면 어떡해요. 나도, 잠들어요? 이렇게나, 준비 없이요? 정말, 다시는 눈 뜨지 않을 거예요? 내게 인사도 해주지 않을 거예요? 나는 당신의 품 안으로, 안으로 파고드는데, 당신이 나를 안아주지 않아요. 서러워. 내가 울면 언제나 당신은 외면하는 법이 없었잖아요. 왜 이렇게 매정해요…. 내가 잘못했어요. 미안해요. 당신을 외롭지 않게 하고 싶었는데, 또 당신을 외롭게 했어요. 또 다시 당신에게 그렇게 했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정말. 그러니까, 나 좀 안아줄래요? 여기는, 정말 너무 추워요. 깜깜해요…….